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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의 기도 ' 의 역사적 모순
십십
2024. 8. 3. 09:59
안녕하세요, 오늘은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기도는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가르침을 반영하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기도가 현대 사회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평화의 기도가 갖는 잠재적인 문제점을 심층 분석해보겠습니다.
평화의 기도 전문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소서. 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평화의 기도 심층 분석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개인이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중세 시기의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회는 평화보다는 폭력과 전쟁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평화 추구가 겉치레에 불과했음을 보여줍니다.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소서." 매우 이상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종교 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처형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실제로는 미움과 다툼, 분열을 조장했음을 보여줍니다.
- "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자기희생과 이타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에게 부당한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부패와 권력 남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이는 종교 개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주의입니다. 특히, 용서함으로써 용서받는다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이러한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평화의 기도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위로를 주지만,
그 이면에는 이상주의적 접근, 개인의 책임 강조,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불균형,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교회는 좋은 말로 눈속임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